'xx길' 전국 500개 넘어…지자체 "베끼고 보자"농촌체험·슬로시티·유채꽃 축제
2013. 3. 30. 10:21ㆍ자료실(걷기,여행)
[세계일보]
대한민국에 '베끼기 열풍'이 한창이다. 시골 구석구석에 트레일(걷는 길) 표지판이 들어서고 농촌체험마을·슬로시티·친환경마을 등 비슷비슷한 관광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성공을 거둔 관광 콘텐츠를 너 나 할 것 없이 따라하다 보니 '원조' 시비가 나올 판이다. 지자체 홍보만 믿고 현장에 갔다가 "짝퉁에 속은 느낌"이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얽힌 실타래 푸는 것 같은 도보길 찾기
최근 강원도 동해안 도보 코스를 다녀온 관광객 중에는 길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다고 혀를 차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재 강원도에서 동해안을 끼고 있는 지자체는 북쪽으로부터 고성군·속초시·양양군·강릉시·동해시·삼척시 등 모두 6개. 이 6개 지자체의 해안을 연결하는 도보 코스는 큰 것만 추려도 5개가 넘는다. 국토교통부의 '해안누리길'과 '녹색경관길', 안전행정부의 '우리 마을 녹색길',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 환경부의 '국가생태탐방로', 산림청의 '산림문화체험길'이다. 이 길 조성에는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가 5대 5로 투입됐다. 여기에 강원도는 '산소길'을 만들어 놓았고,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길도 있다.
이 길은 지자체나 주제에 따라 길 이름이 나뉘고, 각각의 길은 또다시 서너 개씩의 코스를 거느리고 있다. 이 길들은 붙었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겹치는 구간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는 게 얽힌 실타래 푸는 것처럼 어렵다.
우리나라에 벽화마을이 처음 조성된 곳은 2006년 전북 군산시 해망동과 2007년 충북 청주시 수암골, 경남 통영시 동피랑마을이다. 허름한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가 달동네의 분위기를 확 바꿨고, 관광객이 몰리며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러자 순식간에 전국 곳곳에 벽화마을이 생겨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따라 조성된 벽화마을은 현재 7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만든 벽화마을은 100여개로 추산된다는 게 문화부 관계자의 설명. 그런데도 벽화마을을 서로 만들려고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농촌마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국 농촌·산촌·어촌에 수백개의 체험 마을이 만들어졌지만, 체험 프로그램은 '감자 캐기' '떡메치기' '물고기 잡기' 등 천편일률적이다. '느림의 가치'를 추구하는 슬로시티(Slow City)도 지자체들의 경쟁적 참여로 12곳에 이른다.
◆장소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축제
'베끼기'의 원조는 단연 축제다. 최근 몇 년 동안 감사원과 언론 등에서 여러 번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난 여론도 적지 않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봄에 벌어지는 수많은 꽃 축제 중 하나인 유채꽃 축제가 대표적이다. 금세 피었다 지는 매화나 벚꽃과 달리 유채꽃은 두 달 가까이 피어 있다. 그러다 보니 유채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지역에도 유채꽃 축제가 생겨났다. 당초 유채꽃은 제주도가 유명했지만, 이제는 전국 10개 넘는 지자체에서 유채꽃 축제가 벌어진다. 강원도 화천에서 '대박'을 터뜨린 산천어 축제도 유사 상품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강원도 다른 지역과 경기·전북 등에서 비슷한 얼음 낚시 축제를 선보이며 관광객 유치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하는 축제는 9개나 되고, 쌀 축제도 10개가 넘는다.
◆부작용 속출하는 베끼기 문화
한 관광전문가는 "가령 특이한 볼거리가 5개쯤 있다면 경쟁력이 있지만, 100개로 늘어난다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관광객도 분산돼 경제효과도 없지 않겠느냐"며 "모두가 살려면 천편일률적인 관광콘텐츠가 다양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보 코스의 가장 큰 문제는 중복투자와 그에 따른 예산낭비다. 길은 하나인데 여러 개의 표지판과 나무데크가 깔린다. 시설물이 너무 많아 이용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주변 환경과 경관 훼손이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방축제 중에는 주민의 호응이 없고 관광객의 흥미를 끌지 못해 몇 년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없어지는 게 부지기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영화·드라마 세트장도 지자체 예산을 들여 만들었다가 방치하다시피 하는 사례도 적잖다. 경북 울진군 서면의 한 주민은 "마을 근처의 영웅시대 드라마 세트장은 흉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벽화마을도 사후관리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칠이 벗겨지고 쓰레기가 쌓여 동네가 더 볼썽사납게 변한 곳도 있다.
박창억 기자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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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베끼기 열풍'이 한창이다. 시골 구석구석에 트레일(걷는 길) 표지판이 들어서고 농촌체험마을·슬로시티·친환경마을 등 비슷비슷한 관광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성공을 거둔 관광 콘텐츠를 너 나 할 것 없이 따라하다 보니 '원조' 시비가 나올 판이다. 지자체 홍보만 믿고 현장에 갔다가 "짝퉁에 속은 느낌"이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동해안 해변길에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는 도보길 안내판. 녹색연합 제공 |
최근 강원도 동해안 도보 코스를 다녀온 관광객 중에는 길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다고 혀를 차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재 강원도에서 동해안을 끼고 있는 지자체는 북쪽으로부터 고성군·속초시·양양군·강릉시·동해시·삼척시 등 모두 6개. 이 6개 지자체의 해안을 연결하는 도보 코스는 큰 것만 추려도 5개가 넘는다. 국토교통부의 '해안누리길'과 '녹색경관길', 안전행정부의 '우리 마을 녹색길',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 환경부의 '국가생태탐방로', 산림청의 '산림문화체험길'이다. 이 길 조성에는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가 5대 5로 투입됐다. 여기에 강원도는 '산소길'을 만들어 놓았고,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길도 있다.
이 길은 지자체나 주제에 따라 길 이름이 나뉘고, 각각의 길은 또다시 서너 개씩의 코스를 거느리고 있다. 이 길들은 붙었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겹치는 구간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는 게 얽힌 실타래 푸는 것처럼 어렵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농촌마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국 농촌·산촌·어촌에 수백개의 체험 마을이 만들어졌지만, 체험 프로그램은 '감자 캐기' '떡메치기' '물고기 잡기' 등 천편일률적이다. '느림의 가치'를 추구하는 슬로시티(Slow City)도 지자체들의 경쟁적 참여로 12곳에 이른다.
제주도 유채꽃이 인기를 끌자, 전국 10곳에서 관련 축제를 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베끼기'의 원조는 단연 축제다. 최근 몇 년 동안 감사원과 언론 등에서 여러 번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난 여론도 적지 않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봄에 벌어지는 수많은 꽃 축제 중 하나인 유채꽃 축제가 대표적이다. 금세 피었다 지는 매화나 벚꽃과 달리 유채꽃은 두 달 가까이 피어 있다. 그러다 보니 유채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지역에도 유채꽃 축제가 생겨났다. 당초 유채꽃은 제주도가 유명했지만, 이제는 전국 10개 넘는 지자체에서 유채꽃 축제가 벌어진다. 강원도 화천에서 '대박'을 터뜨린 산천어 축제도 유사 상품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강원도 다른 지역과 경기·전북 등에서 비슷한 얼음 낚시 축제를 선보이며 관광객 유치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하는 축제는 9개나 되고, 쌀 축제도 10개가 넘는다.
한 관광전문가는 "가령 특이한 볼거리가 5개쯤 있다면 경쟁력이 있지만, 100개로 늘어난다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관광객도 분산돼 경제효과도 없지 않겠느냐"며 "모두가 살려면 천편일률적인 관광콘텐츠가 다양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보 코스의 가장 큰 문제는 중복투자와 그에 따른 예산낭비다. 길은 하나인데 여러 개의 표지판과 나무데크가 깔린다. 시설물이 너무 많아 이용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주변 환경과 경관 훼손이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방축제 중에는 주민의 호응이 없고 관광객의 흥미를 끌지 못해 몇 년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없어지는 게 부지기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영화·드라마 세트장도 지자체 예산을 들여 만들었다가 방치하다시피 하는 사례도 적잖다. 경북 울진군 서면의 한 주민은 "마을 근처의 영웅시대 드라마 세트장은 흉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벽화마을도 사후관리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칠이 벗겨지고 쓰레기가 쌓여 동네가 더 볼썽사납게 변한 곳도 있다.
박창억 기자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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